채형원이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시점에서 결국 임창균의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인간은 유기현 뿐이었다. 적어도 창균은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가 바로 유기현 뿐이었으니까. 기현의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게 되자 창균은 자연스럽게 기현의 집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날도 어김없...
경영학과 3학년 채형원. 적어도 이 광활한 캠퍼스에서 그를 모르는 이는 기필코 간첩 신고를 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늘 지나치게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기계적으로 뱉어내는 식권을 손에 쥐어든 형원이 학식당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식당 입구를 향해 모여든다. 그는 빛깔 좋은 그레이 색의 니트를 재킷 안에 입고 있었는데,...
임창균이 어렴풋이 제 성 정체성과도 같은 것에 대해 얄팍한 고찰을 했던 나이가 17세였다. 야, 창균아. 넌 왜 여자친구 안 사귀냐? 와꾸는 반반하게 생긴 게. 불과 며칠 전까지는 옆 반 유진이랑 사귀더니만 하루의 공백 기간을 거쳐 금세 윗학년 선배인 혜영이 누나와의 커플 프사를 걸어놓은 민식이의 말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소탈한 웃음과...
*약간의 소재 주의 [형, 나 그냥 죽을래.] 걔는 늘 그릇된 생각을 서슴지 않게 뱉어대고는 했다. ‘그릇됐다’라는 판단은 오로지 나의 안일한 머릿속에서 내린 독단적인 판단이었지만 적어도 틀린 판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창균이는 정확히 일주일 전에도 이런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내게 보낸 전적이 있었다. 걔가 일주일간의 텀을 두고 나에게 이런 비...
대원그룹 대표이사 유기현. 창균의 앞에 있던 남자는 제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런 말을 하며 기현이 건네준 명함에는 그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는 듯이 대표이사 유기현이라는 글자가 정갈하게도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협상가 유기현은 임창균의 시간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을 자주 방문하는 호구들마저 절대로 마주칠 수 없을 이 가게의 ...
“그래서, 아직까지도 네 생각은 변함 없다는 거지?” “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든 거냐.” 아버지요.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담담히 집어 삼키고 나서야 형원은 짧은 목례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도착한 곳에서는 한 차례의 이사회 회의가 마무리 된 직후였다. 대원그룹 차기 후계자 선정 관련의 건. 그 예전...
“우리 대니 왔어?” “안녕하세요.” “대니, 너 우리 사장님 본적 없지?” “예.” 임창균, 21세, 나름 평범하다고 자부하는 대학생, 현재 시급 꽤나 높은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 중. 그것이 임창균이라는 인간을 소개하기에는 불친절할 만큼 간략한 설명이었지만, 적어도 현재의 위치 만큼은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도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 도장을 찍...
영화 보러 올 거지? 이미 조조 영화 메이트가 되어버린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공강날을 조조 영화로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창균이 단골 가게에 들러 페퍼로니 피자 두 조각을 사 들고 영화관으로 향하면 그 앞에는 콜라 두 잔을 들고 있는 형원이 있었다. 누구 한명 안 나온다고 영화관이 망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둘은 꼭 그렇게 둘이서...
창균아, 너 나랑 같이 일 하자.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민혁은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러한 점이 이 카카오톡 메세지 하나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다짜고짜 권유도 협박도 아닌 그런 메세지라니. 그 무렵 창균은 아는 선배의 팀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정식 계약 같은 건 없었고. 그냥 포트폴리오나 쌓으면서 그렇게...
나는 임창균을 사랑한다. 정확히는 사랑이라 불리우는 그 단어의 거창한 의미보다는 덜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부르고 있다. 시작은 사소했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어찌 자신에게 불어올 일을 알 수 있을까. 그저 이태원에서 술 좀 빨던 도중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이민혁을 만났고, 고...
이름 김재협, 나이 35세, XX건설 김재창 회장의 차남, 폭행치사 및 시체유기, 불법 마약 유통, 그 외 다수의 폭행 전과, 1급 타깃으로 규정하여 지시를 전달한다. 형원이 제 손에 들린 커피를 한 잔 빨아들인다. 진짜 인간쓰레기 그 자체네. 저런 새끼들은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 건가. 스크린 앞에서 타깃에 대한 설명을 마친 남자가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hw_ck__ https://peing.net/ko/roong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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